나의 이야기

[스크랩] 노계가(蘆溪歌) / 박인로(朴仁老)

채운(彩韻) 신다회 2009. 9. 19. 05:58

 

 

백수에 방수심산 태만한 줄 알건마는

평생 소지를 베풀고야 말랴 여겨

적서 삼춘에 춘복을 새로 입고.

죽장 망혜로 노계 깊은 골에 행여 마침 찾아오니,

제일 강산이 임자 없이 버려 있다.

고왕 금래에 유인 처사들이 많이도 있건마는

천간 지비하여 나를 주려 남겼도다.

주저 야구타가 석양이 거읜 적에

척피 고강하여 사우로 돌아보니.

현무 주작과 좌우 용호도 그린 듯이 갖췄구나.

산맥 맺힌 아래 장풍 향양한데.

청라를 헤쳐 들어 수연 와실을

배산 임류하여 오류변에 지어 두고,

단애 천척이 가던 용이 머무는 듯

강두에 둘렸거늘 초초정 한 두 간을

구름 띈 긴 솔 아래 바위 기대 지워내니,

천태만상이 아마도 기이쿠나.

봉만은 수혀하여 부춘산이 되어 있고,

유수는 반회하여 칠리탄이 되었으며,

십리 명사는 삼월 눈이 되었도다.

이 호산 형승은 견줄 데 전혀 없네.

소허도 아닌 몸이 어느 절의 알리마는

우연 시래에 이 명구 임자 되어

청산 유수와 명월 청풍도 말 없이 절로절로

저익 같던 묵은 반과 엄자흥의 조개도 값 없이 절로절로

산중 백물이 다 절로 기물되니,

자릉이 둘이요, 저익이 셋이로다.

아아! 이 몸이 아마도 괴이쿠나.

입산 당년에 은군자 되었는가?

천고 방명을 이 한몸에 전하는군.

인간의 이 이름이 인력으로 이룰소냐?

산천이 영이하여 도와냈나 여기노라.

중심이 형연하여 세려 절로 그쳐지니,

광풍 제월이 강자리에 품었는 듯

호연 진취 날로 새로워지노라.

비금 주수는 육축이 되었거늘

달 아래 고기 낚고, 구름 속에 밭을 갈아

먹고 못 남아도 그칠 적은 없도다.

무진한 강산과 허다한 한전은 분급자손 하려니와

명월 청풍은 나눠주기 어려우매

재여 부재예 양지하는 아들 하나

태백연명 증필에 영영별급 하였노라.

나의 이 말이 우활한 듯하건마는

위자 손계는 다만인가 여기노라.

또 어리석은 이 몸은 인자도 아니요, 지자도 아니로되,

산수에 벽이 일어 늙을수록 더욱 하니,

저 귀한 삼공과 이 강산을 바꿀소냐?

어리석고 미친 이 말을 웃을 이도 많건마는

아무리 웃어도 나는 좋게 여기노라.

하물며 명시에 버린 몸이 할 일이 아주 없어

세간 명리란 뜬구름 본 듯하고,

무사 무려하여 물외심만 품고 있어

이내 생애를 산숙산에 붙여두고

춘일이 긴 때에 낚싯대 비껴 쥐고,

갈건 포의로 조대에 건너오니,

산우는 잠깐 개고, 태양이 쪼이는데,

맑은 바람 더디 오니, 경면이 더욱 밝다.

검은 돌이 다 보이니, 고기 수를 알겠도다.

고기도 낯이 익어 놀랠 줄 모르거든 차마 어찌 낚을건가?

파조 배회하며, 파심을 굽어보니,

운영 천광은 어리어 잠겼는데,

어약우연을 구름 위에 보았구나.

크게 문득 경괴하여 부찰 양관하니, 상하천이 완연하다.

일진 동풍에 그 어떤 어적이 높이 불어 보내는가?

강천이 요적한데 반갑게도 들리도다.

임풍 의장하여 좌우로 돌아보니,

대중 청경이 아마도 소쇄쿠나.

물도 하늘 같고, 하늘도 물 같으니,

벽수 장천은 한 빝이 되었는데,

물가에 백구는 오는 듯 가는 듯 그칠 줄을 모르도다.

암반 산화는 금수병이 되어 있고,

간변 수양은 초록 장이 되었는데,

양신 가경은 내 혼자 거느리고,

정치 화시를 허도치 말라 여겨 아이 불러 하는 말씀,

이 심산 궁곡에 해착이야 보겠는가?

살진 고사리 춘기한 당귀초를

저포녹포 상간하여 크나큰 세류사에

흡족히 담아 두고 붕어회 초미에

눌어 생치 섞어 구워 갖가지 들이거든

와준에 백주를 박잔에 가득 부어

한 잔 또 한 잔 취토록 먹은 후에

도화는 홍우되어 취면에 뿌리는데

태기 넓은 돌에 높이 베고 누웠으니

무회씨 적 사람인가? 갈천씨 때 백성인가?

희황 성시를 다시 본가 여기노라.

이 힘이 뉘 힘인가? 성은이 아니신가?

강호에 물렀은들 우군 일념이야 어느 각에 잊겠는가?

시시로 머리 들어 북신을 바라보고

남 모르는 눈물을 천일방에 지우누나.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느님이여!

산평 해갈토록 우리 성주 만세소서.

희호 세계에 삼대 일월 비치소서.

오천 만년에 병혁을 쉬게 하소서

경전 착정에 격약가를 불리소서.

이 몸은 이 강산풍월에 늙을 줄을 모르리라.


[시어 풀이]


* 방수심산 : 물을 찾고 산을 찾아감.

* 태만 : 너무 늦음.

* 벱고야 : 베풀고야. 이루고야.

* 적서 삼촌 : 병자년 음력 3월 봄.

* 유인 처사 : 그윽한 곳에 머물러 사는 은일지사.

* 천간 지비 : 하늘이 숨겨 놓고, 땅이 감추어 둠.

* 주저 양구 : 나아가지 아니하고 머뭇거리기를 꽤 오래함,

* 척피 거강 : 저쪽 높은 언덕에 오름

*현무 주작 : 현무는 북방을 지키는 상징 신이고, 주작은 남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두 새들로 형용

됨, 여기서는 산줄기의 형세를 가리킴.

* 좌우 용호 : 동방신인 청룡과 서방신인 백호. 여기서는 산세의 형상을 가리킴.

* 장풍향양 : 바람이 가려지고 양지 바른 쪽을 향함.

* 청라 : 푸른 덩굴.

* 수연 와실 : 두어 서까래를 이은 달팽이 껍질만한 개구리 집. 곧 규모가 아주 작은 집.

* 배산임수 : 집 뒤로는 산을 지고 앞으로는 흐르는 냇물을 임함.

* 오류변 :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 가장자리. 중국 진나라 은사 도연명의 오류선생이라는 호를 모방한

것임.

* 봉만 : 산봉우리들.

* 부춘산 : 후한광무제 때 은사 엄광이 낚시하며 숨어 살던 곳. 부춘저라고도 함.

* 반회 : 서리어 빙빙 돎.

* 칠리탄 : 부춘산에 흐르는 긴 여울, 부춘저와 같은 곳.

* 소허 : 요임금 때 은사 소부와 허유.

* 미록 : 고라니와 사슴.

* 저익 : 춘추시대 은사인 장저와 겉닉.

* 엄자릉 : 후한 광무제 때 은사로 이름은 광.

* 형연 : 아름다운 모양.

* 세려 : 세상사에 관한 근심.

* 광풍제월 : 비 온 뒤에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 여기서는 마음에 근심과 집착이 없고 명랑 상쾌함.

* 강자리 : 마음 속.

* 호연 진취 : 마음이 넓고 뜻이 큰 모양과 참된 취의.

* 비금주수 : 날아다니는 새들과 기어 달리는 짐승들.

* 재여 부재 :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

* 양지 : 부모의 뜻을 받들어 섬김.

* 태백 연명 : 이태백과 도연명.

* 영영 별급 : 길이길이 재산 따위를 따로 떼어 나누어 줌.

* 위자손계 : 자손을 위한 계획.

* 삼공 : 조정에서 제일 높은 세 벼슬. 조선 때에는 삼정승.

* 차조 배회 : 낚시질을 마치고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거닐음.

* 어약우연 : 물고기들이 못에서 뛰어 놀음.

* 부찰 양관 : 굽어 살피고, 우러러 쳐다 봄.

* 어적 : 고기잡이배의 고동소리.

* 요적 : 고요하고 쓸쓸함.

* 임풍 의장 : 바람이 불어서 지팡이에 의지함.

* 암반 산화 : 바위 가장자리에 핀 산꽃.

* 금수병 : 수를 놓은 비단 병풍.

* 간변수양 : 물가에 서 있는 늘어진 버들.

* 정치 화시 : 바로 꽃이 한참 필 때.

* 허도 : 헛되이 보냄.

* 해착 : 바다에서 나는 먹을 수 있는 것들.

* 당귀초 : 승검초. 한의에서 보혈제로 씀.

* 저포 녹포 상간 : 돼지고기 말린 포와 사슴고기를 말린 포의 사이사이에 섞음.

* 눌어 생치 : 누치라는 물고기와 익히지 않은 날 꿩.

* 와준 : 질그릇으로 된 술항아리.

* 백주 : 중국의 배갈이 아닌 우리나라 막걸리.

* 박잔 : 가가지로 된 술잔.

* 태기 : 이끼가 낀 물속의 자갈돌들. 여기서는 이끼 낀 낚시터의 넓은 바윗돌.

* 무회씨 :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으로 태평성대의 상징적 치자.

* 희황 성시 : 복희씨가 다스리던 태평한 시절.

* 신평 해갈 : 산이 평지가 되고 바닷물이 말라 없어짐.

* 회호 : 백성들이 화락한 모습.

* 삼대 일월 : 중국의 하, 은, 주 세 나라 시대의 해와 달.

* 경적 착정 : 밭을 갈고 우물을 팜.

* 격양가 : 괭이로 땅을 두드리며 세월이 태평함을 노래한 중국 고대 민요.


[작품개괄]


- 연대 : 1636년(인조14)

- 작자 : 박인로

- 갈래 : 가사 . 정격가사

- 형식 : 총208구 93행으로 이루어진 가사(4.4조 4음보 가사체, 운문체)

- 주제 : 노계의 경관과 자신의 산수간(山水間) 생활을 읊은 아름다운 노래

- 의의 : ①직접 체험이 바탕

         ②기존 가사의 운율에서 벗어난 내용중심의 표현 → 서민가사에 영향.


[작품해제]


박인로가 남긴 7편의 가사 가운데 최후의 작품으로 '노계집'에 수록되어 있다. 형식은 4음 4보격 무한

연속체라는 가사의 율격을 대체로 지켰으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 이 상당수 보인다.

서술양식은 1인칭 독백체로 작자의 주관적 감회와 체험을 노래하는 서정적 양식을 취하였으나 끝 대목

에 이르러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아"로  진술함으로써 하나님을 청자로 설정하여 작자가

청자에게 자신의 강렬한 염원을 제시하는 주제적 양식을 취하였다. 즉, 작자의 감흥과 체험만을 노래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작자가 염원하는 바의 이상 세계를 제시하였는데, 그의 이상세계란 "오천만년에 병

혁을 쉬우소셔, 경전착정에 격양가를 불리소셔"라고 하여 밭 갈고 우물 파서 생활의 기본적인 것을 해

결하면 더 바랄 것이 없으니 평화와 만족을 구가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세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작자의 은거지인 노계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자연에 몰입하는 주관

적인 심회를 읊은 것이 중심 내용을 이루지만,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한 작자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아

울러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작품의 서두는 늙은 몸이 되어 평생소원이던 산수를 찾아드는 감회로 시작

된다. 이어서 노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삶의 흥취와 의미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는 강호 자연에 묻혀 태평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것은 우국일념을 잊지 않는 충정을 말하였

다. 

이어서 결론으로 작자의 소망을 하늘에 기원하고 강호 생활과 더불어 늙을 줄을 모르는 자신의 현재적

삶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이로 보아 이 작품의 사상적 기반은 산수 명승을 즐기는 자연애사상과

우국지성에 넘치는 충효사상이 중심을 이루었다 하겠다. 전체의 구상이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섬

세한 필치가 숨어 있으며,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여 사대부의 가사문학을 완성한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미에 대한 예찬이나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하고 평화를 희

구하는 사상을 담아 참신한 주제라고는 볼 수 없다. 출전은《노계집》제3권이며《독락당(獨樂堂)》다음

가는 장편으로 그가 남긴 7편의 가사 가운데 최후의 작품이다.


박인로 朴仁老 [1561~1642]


 본관 안동(安東). 자 덕옹(德翁). 호 노계(蘆溪) ·무하옹(無何翁). 영천(永川) 출생. 승의부위(承議副尉)

석(碩)의 아들. 어려서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났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정세아(鄭世

雅)의 막하에서 별시위(別侍衛)가 되어 무공을 세우고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성윤문(成允文)의 발탁으

로 종군, 1598년 왜군(倭軍)이 퇴각하자 사졸(士卒)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가사(歌辭) 《태평사(太平

詞)》를 지었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 ·선전관을 지내고 이어 조라포수군만호(助羅浦

水軍萬戶)로 군비(軍備)를 증강하는 한편 선정(善政)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퇴관 후 고향에 은거하며 독서와 시작(詩作)에 전념하여 많은 걸작을 남기고, 1630년(인조 8) 노령으

로 용양위 부호군이 되었다. 도학(道學)과 애국심 ·자연애(自然愛)를 바탕으로 천재적 창작력을 발휘,

시정(詩情)과 우국(憂國)에 넘치는 작품을 썼으며 장가(長歌)로는 정철(鄭澈)을 계승하여 독특한 시풍(詩

風)을 이룩하고 가사문학(歌辭文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영천의 도계향사(道溪鄕祠)에 제향되었

다. 문집(文集)에 《노계집(蘆溪集)》, 작품에 《태평사(太平詞)》 《사제곡(莎堤曲)》 《누항사(陋巷

詞)》 등이 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출처 : 행복가족연사모
글쓴이 : 思岡 안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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