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거든 이렇게 해
잔을 두 개 놓고
지나는 것이 바람 같으면 바람을 담아서
강물 같으면 강물을 담아서
나 한 잔 그대도 한 잔
천불전 댓돌 아래 푸른 돌꽃들
좌복에 눌어붙은 수좌처럼 앉았거든
하늘에 걸린 풍경이 새벽을 깨우고
그 새벽 몸에 적신 천 년 된 지붕
기와 깨지는 소리가
이제 막 한 소식 하는 소리로 들리거든
위하여 나 한잔 그대도 한 잔
때로는 속절없음도 맑아
범종각 시리게 덮인 눈이 녹아 둑뚝
떠나온 날 빗방울 같이 떨어지거든
그대 눈길 박힌 산천도 한 잔
그대 애타는 꽃 그림자도 한 잔
안개 이는 골짜기 쓰린 새벽도 한 잔
그러다 동굴처럼 쓰러지는 아침
밝아오는 해를 계란 노른자 삼아
나 한 잔 그대도 한 잔
- 석여공 '흘러라 꽃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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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노베이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