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팽이는 서고 싶다』(창비, 2001)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목련 전차』(창비, 2006)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
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이었네.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네.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네.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물드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꽃물이 똑똑
떨어지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일생을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그 드물고 정하다는*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나니.
*백석의 시 중에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
목련꽃 브라자 /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꽃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서정시학 (2003년 여름호)
엄마의 난닝구/ 작가미상
작은 누나가 엄마 보고 엄마 난닝구가 다 떨어졌다 한 개 사이소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난닝구 구멍이 콩만 하게 뚫려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 만하게 뚫려 있다 뚫려져 있다
아부지는 그걸 보고 엄마 난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이카노 한다
너무 째모 걸레도 몬한다 두 번은 더 입을 수 있을낀데
******* 배한권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이 시詩가 너무 좋아 초등학교 학생들 지도할때 꼭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 신다회 - *******
- 20여년전 대구의 어느 초등학생이 썼다는 시
아내가 구멍난 빤스를 꿰매고 있다. 니 지금 뭐 하나? 버리고 하나 사라. 얼마나 된다고. 지금 남편 월급 적다고 시위하는 거지. 아내는 배시시 웃는다. 아직 몇 번은 더 입을 수 있는 걸 왜 버려요.
지지리 궁상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이다. 엄마가 구멍난 빤스를 기워 입던 유년의 기억을 지금 아내가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엄마의 지지리 궁상이, 아내의 지지리 궁상이 어느 가계家系를 오래 지켜냈을 것인데.
그러고 보니, 아내의 속옷을 사 주었던 게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
오늘은 아내에게 꽃무늬 레이스 팬티 한 장 사주어야겠다.
- 소통
팬티와 빤스/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살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