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리와 아기별
마해송
남쪽 나라 따뜻한 나라, 사람 사는 동네도 없고,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간 자취도 없는 바닷가에 다만 끝없이 넓고 넓은 모래 벌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산이라고는 없는 벌판이라 나무도 없고, 나무가 없으니 노래를 부르는 새조차 한 마리 없고, 풀 한 잎도 없었습니다.
희고 흰 모래 벌판과 푸르고 푸른 바닷물만이 한 끝에서 한 끝까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가끔가다 바람이 솨아하고 불어 와서 지나가는 소리와 바닷물이 찰싹찰싹하고 깃을 치는 소리 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쓸쓸하고 고요한 바닷가에,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밀물에 밀려서 바닷가에 놓여진 주먹만한 감장돌 하나를 의지하고 조그만, 그렇지만 어여쁘고 깨끗한 풀 한 잎이 뾰족이 솟아 나왔습니다.
그 풀이 점점 자라 두 잎이 되고 세 잎이 되더니 가지가 뻗고, 가지에는 곱고 고운 빨강꽃이 한 송이 피어났습니다.
또 파랑꽃도 한 송이 피어났습니다.
그 다음은 노랑꽃, 또 그 다음에는 흰꽃 해서 나중에는 아주 함빡 오색이 영롱하게, 여러 가지 꽃이 피어났습니다.
파란 바다와 흰 모래 벌판 사이에 오똑하게 피어 선 이 오색꽃은 참으로 무엇하고도 비길 수 없는 아름다운 “바위나리”라는 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어여뿐 꽃은
그 어느 나라의
무슨 꽃일까.
먼 남쪽 바닷가
감장돌 앞에
오색 꽃 피어 있는
바위나리지요.
바위나리는 날마다 날마다 이런 노래를 어여쁘게 부르면서 동무를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바다와 벌판과 바람결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바닷가에는 동무될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며칠을 가다리고 기다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위나리는,
“아아, 이렇게 어여쁘고 아름다운 나를 귀여워해 줄 사람이 없구나!”
하고 훌쩍훌쩍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아침이 되어서 해가 동해 바다에 불끈 솟아오르면,
“옳다. 오늘은 누가 꼭 와주겠지!”
하고 더 어여쁘게 단장을 하고 고운 목소리를 뽑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지만 해가 서해 바다에 슬그머니 져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와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바위나리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서,
“아아, 오늘도 아무도 오지 않고 해가 졌구나!”
하고 또 다음 날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음 날 아침에 해가 동해 바다에 불끈 솟아오르면,
“옳다. 오늘은 누가 꼭 와주겠지!”
하고 이렇게 몇 날 동안을 날마다 날마다 노래를 부르면서 동무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바위나리를 찾아 와 주는 동무가 없었습니다.
바위나리는 소리를 질러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울음 소리가 밤이면 남쪽 하늘에 맨 먼저 뜨는 아기별의 귀에까지 들려 올라왔습니다.
아기별은 이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누가 이렇게 슬프게 울까? 내가 가서 달래 주어야겠다.”
하고 별나라의 임금님께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고 울음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쭈욱 내려왔습니다.
울음 소리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온 아기별은 바위나리가 혼자서 이렇게 울고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참이나 정신 없이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바위나리의 뒤로 가까이 가서,
“아니 왜 울어요?”
하고 어깨를 툭 쳤습니다.
바위나리도 깜짝 놀랐습니다.
돌아다 보니까 난데없이 아름다운 별님이 아닙니까.
바위나리는 어떻게 좋은지 어쩔 줄을 모르고 가로 뛰고 세로 뛰며,
“별님 ! 별님 !”
하고 불러댔습니다.
잠깐 동안만 달래 주고 돌아가려고 했었지만 바위나리가 아름답고 귀여운 것을 보니까 아기별도 이제는 바위나리와 같이 더 오래오래 놀고만 싶어졌습니다.
다른 생각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아기별과 바위나리는 이야기도 하고 다름질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결에 새벽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아기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쳤습니다.
“큰 일 났다. 바위나리! 나는 얼른 가야 돼! 오늘 밤에 또 올게, 울지 말고 기다려 응”
하고 돌아가려 했습니다.
바위나리는 아기별의 옷깃을 꼭 붙들고 울면서 놓지를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얼른 가야만 돼! 좀 더 늦으면 하늘 문이 닫혀져서 들어갈 수거 없어. 내 오늘 밤에 꼭 내려올게”
하고는 스르르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바위나리는 하는 수 없이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아기별은 어서어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되자 아기별은 ‘옳다구나’하고 또 임금님께도 누구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오고 싶던 바닷가로 또 내려왔습니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이렇게 해서 밤마다 만나서 즐겁게 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디선지 찬바람이 불어와서 흰 모래가 날리고 바닷물이 드셀레고 하는 통에 바위나리는 그만 병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시들어서 머리를 숙이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이것을 본 아기별은 걱정하면서 간호를 했습니다.
추워하는 바위나리를 품안에 꼭 안아 따뜻하게 해 주고 머리에 손을 얹어 짚어 주기도 하다가 인제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위나리는,
“별님! 어서 가세요, 늦으면 어떡해요. 어서 돌아가세요. 그리고 오늘 밤에도 꼭 와 주 세요. 네!”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기별이 언 듯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정말 시간이 벌써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병든 바위나리를 혼자만 있게 두고서는 차마 그대로 일어나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바위나리가 또,
“나는 괜찮으니 어서 가세요.”
하고 재촉하는 바람에
“자아, 그럼 내 오늘 밤에 또 올게, 응!”
하고 하늘 문이 닫혔을까 봐 걱정하며 하늘로 하늘로 아기별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늘 문이 꼭꼭 닫혀 버린 것입니다.
“아차 큰 일 났다!”
아기별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지둥하면서 몇 번이나 문지기를 불러 보았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뒤로 가서 있는 힘을 다 내서 까아맣게 높은 성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벌써 요새 밤마다 아기별이 어디로 갔다 오는 줄을 다 알고 있었습니
다.
큰 일 났습니다.
아기별은 임금님 앞에 불려 갔습니다.
“나가거라!”
임금님은 큰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기별은 무서워서 몸을 벌벌 떨며,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겨우 임금님 앞을 물러 나왔으나 병들어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바위나리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나리는 그 날 밤 늦도록 아기별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아기별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기다리는 아기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위나리의 병은 점점 더해 갈 뿐이었습니다.
꽃은 시들고 몸은 말라 들었습니다. 간신간신히 감장돌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바위나리는 어디선가 별안간에 불어오는 모진 바람에 그만 휘익 바다로 날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바위나리는 썰물과 함께 바다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아기별은 날마다 밤마다 바위나리 생각만 하고 울었습니다.
어떻게든지 한 번 바닷가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소리를 질러 울고 싶었으나 그도 임금님과 여러 별들이 들을까 봐 울 수도 없고 다만 솟아 나오는 눈물만은 어찌할 수 없어 눈에는 문물이 그칠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 임금님의 눈에 거슬리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임금님이 아기별 앞으로 오시더니,
“너는 요새 밤마다 울고 있기 때문에 별의 빛이 없다. 빛 없는 별은 쓸데가 없으니 당 장에 나가거라!”
하고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면서 아기별을 붙들어 하늘 문 밖으로 내어 쫓았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아기별은 정신을 잃고 한정 없이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아기별이 풍덩실 빠져 들어간 곳은 오색 꽃 바위나리가 바람에 날려 들어간 바로 그 위의 바다였습니다.
그 후로도 해마다 아름다운 바위나리는 바닷가에 피어나옵니다.
여러분은 바다를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
바다는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환하게 밝게 보입니다.
웬일일까요?
그것은 지금도 바다 그 밑에서 한때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빛나고 있는 까닭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