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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新婦)- 서정주 "

채운(彩韻) 신다회 2009. 6. 17. 17:31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

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