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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한민족효사랑글짓기공모전시상식 : 대상작품 낭독 신다회시인

채운(彩韻) 신다회 2024. 10. 29. 12:27

💌~우리 엄마와 아빠처럼~💌
                                      - 임도연 (학생부 대상작품) -
중학교 3학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국어 시간, 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조선 시대 윤호미라>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었다.
조선 중기 파평 윤씨 집안에 막둥이 윤호가 태어났지만 약해서 애지중지 옥이야 금이야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품을 떠났다.
그때 조선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마로 불리는 천연두에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걸렸으니 무슨 방법이 있었을까. 부모님은 윤호를 살리기 위해 온갖 약도 써보고 간호를 하였지만 꽃잎이 비처럼 내리는 봄날, 윤호는 관속에 눕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이가 땅의 한기에 추울까 걱정이 되어 아버지 옷을 요처럼 깔고, 어머니 옷은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그렇게 윤호는 땅속에 잠들었고 영원 속으로 사라져갔다.
300여 년이 지난 2001년, 화평 윤씨의 후손들은 묘지를 이장하기 위해 땅을 팠다.
그때 윤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포대처럼 옷으로 싸여있는 어린아이 미라. 윤호였다.
썩지 않고 형태가 보존되어, 누군지 알기 위해 학자들에게 조사를 맡겼다.
윤호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 어린아이 미라. 부모의 묘소와 마주하고 있는 곳에 누워있던 미라였다.
자식의 죽음이 얼마나 슬펐으면 아버지의 옷을 요처럼 깔고, 어머니의 옷을 이불처럼 덮었을까.
부모님의 사랑은 그렇게도 극진한가 보다!
영상을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금지옥엽처럼 귀하게 자라셨다. 외할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가 왼쪽 다리에 부상을 당하셔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셔야 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땡볕에서 일을 하셨다.
결혼도 점점 어려워졌다.
다행히 40세가 가까이 되셨을 때 반려자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다행인 것은 두 분에게 장애인 연금이 있었고, 할아버지는 따로 군인 연금을 받았다 뒤늦게 새생명이 태어났다 바로 엄마다.
두 분은 먹고사는 걱정보다 딸이 친구들 사이에 놀림 받을까 봐 염려되었다.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딸을 기죽지 않게 키우셨고
엄마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성장하셨다.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
엄마가 중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다. 바로 월남전에서 입은 고엽제로 인한 병이었다.
결국, 엄마가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머니 덕분에 엄마는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거기에서 아빠를 만나셨다.
엄마는 진지한 만남을 가지면서 할머니께서 청각장애인임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웃으며, “나도 수화를 배워야겠네요.”라고 말하였다.
엄마는 데이트하시면서 아빠에게 수화를 가르쳐 드렸다.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부모님의
효도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아이가 자라 부모가 되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알려준다.
사랑의 배움은 대물림되며 가르침을 받는다.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께 항상 전화를 드리며 안위를 살핀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 덕분이다.
엄마가 지금 힘차게 살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이다. 우리 민족이 효를 중시하는 이유는 조상님이 옛날부터 부모님의 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좋은 문화는 잘 계승해서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엄마와 아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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