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 32.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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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
김삿갓
鶴城山(학성산) 서쪽에는
飄飄然亭(표표연정)이라는 또 하나의 정자가 있어
동쪽의 駕鶴樓(가학루)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삼방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물결이 일렁거리는 龍塘(용당)여울을 이루는데
그 앞으로 쭉 뻗어 나온 학성산의 한 줄기
산마루 끝에 정자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아마도 飄飄然亭(표표연정)이라는 이름은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에 나오는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바람은 솔솔 옷자락에 분다)
라는 시구에서 따 온 듯하였다.
주위에는 고목이 울창하여 꾀꼬리가 날아들고,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南大川 물가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으니
이 풍광을 바라보는 김삿갓이
어찌 시 한 수가 없을 수 있겠는가.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 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누각 하나 있어
覓酒題詩問幾流(멱주제시문기류) 술을 찾고 시를 쓰며 물갈래를 묻노라
古木多情黃鳥至(고목다정황조지) 고목은 정이 많아 꾀꼬리 모여들고
大江無恙白鷗飛(대강무양백구비) 강물은 무심히 흐르는데 갈매기 나는구나
김삿갓은 시를 한 수 읊고 나자
불현듯 가학루에 걸려 있던
鄭夢周(정몽주), 鄭道傳(정도전)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들은 정치색이 농후한 영웅호걸들이어서
그 들의 시에는 무언중에
風雲味(풍운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닌가.
한 바퀴 성을 도니 높은 누각 하나 있어
英雄過去風煙盡(영웅과거풍연진) 영웅이 지나간 자리 풍연은 사라지고
客子登臨歲月悠(객자등임세월유) 길손은 누각에 올라 한가롭게 앉았노라
宿債關東猶未了(숙채관동유미료) 관동 땅 아직 두루 보지 못했으니
欲隨征雁下長洲(욕수정안하장주) 기러기를 따라서 장주로 가 볼가나
*長洲는 定平의 옛 이름
김삿갓은
자기 자신을 아무 욕심도 없는
순수한 시인으로 자처하는 동시에,
세태변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한 세상을 숨 가쁘게 살았던
정몽주, 정도전 같은 영웅들을
은연중에 비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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