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고대 가요

채운(彩韻) 신다회 2009. 9. 19. 05:00

 

구지가(龜旨歌)               해가사(海歌詞)           황조가(黃鳥歌)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정읍사(井邑詞)

 

구지가(龜旨歌)

                     - 작가: 미상(未詳)


龜何龜何(귀하귀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밀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만약 안 내밀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      구워서 먹을 것이로다

 

연대: 가락국 때(A.D. 42)
작가: 미상(未詳)
형태: 한역가, 서사시
주제: 왕이 나타나시기를 바람.
의의: 현전하는 최초의 집단 무요, 주술성을 지닌,
     국문학 발생 초기의 노래.
출전: 삼국유사
기타: '영신군가", '가락국가'라고도 함.


'구지가'는 군주를 기다리는 군무의 노래이다.
장중하고 엄숙한 건국 신화와 이 신화를 빛나게 장식하는
서사시가 구색을 갖추어서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삼국유사 권2.가락국기의 항목).


아득한 옛날(A.D. 42, 신라 유리왕 19년) 3월 계욕일(삼짇날)에
가락국의 서울 김해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 북쪽에 있는 귀지봉에서 무엇을 부르는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 2, 3백 명이 이곳에 모이니,

사람의 소리는 나는 듯하되 그 형상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어 가로되, "여기 사람이 있느냐?"

구간(九干, 가락국 아홉 마을 우두머리)들이
"예, 저희들이 여기 와 있습니다."

또 가로되, "여기가 어딘가?"
"귀지봉입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명하기를 그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 하여
임금이 되라 하셨으므로 이곳에 왔으니,

너희들은 귀지봉의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하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어라.
그것이 곧 너희들이 대왕을 맞는 일이 될 것이다."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모두 기뻐서 가무하였다.

얼마 후 자색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에는 붉은 폭에 금합(金盒)이 싸여 있었다.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6개의 황금 알이 있었다.
그날 밤을 지나 이튿날 새벽에 합을 여니 여섯 동자가 나타났다.

나날이 자라 10여일을 지나서 신장이 9척이나 되었으니,
이는 은(慇)의 천을(天乙)과 같고, 그 얼굴이 용과 같았음은

한의 고조와 같고, 눈썹의 팔채(八彩)는 당고와 같고
눈에 동자가 둘씩 있음은 우순(虞蕣)과 같았다.

그 달 보름날에 즉위하였는데 처음 나타났다고 하여 휘(諱)를
수로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 일컬었으니,

곧 6가야의 하나요, 나머지 5인은 각각 5가야의 주가 되었다.

희망적인 노동요 '귀지가'는 국문학사상 유일무이한 서사시이다.

서사시는 개인의 창작이 아닌 민중의 것이며, 주관적이 아닌
객관성을 띤 시이다.

이 노래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한 민중의 노래요 또 무가적인
주술성을 띠고 있다.

이 노래를 달리 '영신군가(迎神君歌)', '가락국가(駕洛國歌)',
 '귀하가(龜何歌)'라고도 한다.

 

해가사(海歌詞)

                         - 작가: 미상(未詳)
 

龜乎龜乎出水路(귀호귀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 죄 얼마나 큰가

汝躍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헌)   네가 만일 패역하여 내놓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해가사'는 '해가(海歌)'라고도 한다.

사상으로는 '귀지가'와 같으나 배경이나 인물은
향가 '헌화가'와 같다.

'귀지가'의 발달된 '귀지가'와 거의 같은 형태의 노래가
그보다 약 700년 뒤에 민중들에 의해 불려졌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삼국유사 권2.수로부인 항목)

강릉 태수 순정고(純貞公)의 아내 수로부인은 미인이었다.
태수가 아내와 함께 동해안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바다의 용이

나타나서 수로부인을 납치해 갔다.
아내를 잃은 순정공은 아연실색하여 발버둥을 치며 안타까와하였다.

이 때에 지나가던 늙은이가 "그렇게 뒹굴고만 있지 말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노래를 부르시오.

그러면 아내를 찾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일러 주었다.
이때에 부른 노래가 '해가사'이다.


주술적인 노래 '해가사'의 주제는 '귀지가'와 같다.
단지 수로부인이 개입하여 "수로(水路)"와 바다의 용이기 때문에
그물(網)이란 소재가 더 첨가되었을 뿐이다.

'구지가'는 임금을 맞이하는 것인 반면 '해가사'는 잡혀간 아내를
구출하는 주문으로서, 그 동기와 목적은 각각 다르면서도
노래의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조가(黃鳥歌)

                         - 琉璃王


翩翩黃鳥(편편황조)         펄펄 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자웅상의)         암수 서로 놀건마는
念我之獨(염아지독)         외로운 이 내 몸은
誰基與歸(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연대: 고구려 유리왕 3년(B.C. 17)
작자: 유리왕
형태: 한역가, 서정시
주제: 실연의 비애
의의: 현존하는 최초의 서정시, 제천 의식 때 불렀던
     남녀 사랑 노래의 한 토막 인 듯
출전: 삼국사기


유리왕(?-A.D. 18): 고구려 2대 왕. 재위 B.C. 19-A.D. 18.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의 맏아들.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며,

비(妃)는 다물후(多勿候) 송 양(松讓)의 딸 송씨(松氏).
부여에서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와 태자가 됨.
주몽에 이어 즉위 했음.

가장 오랜 노래로서 고구려 제 2대 왕인 유리왕이 지었다.
재위 3년(B.C. 17)에 지은 것으로서, 우리 나라 사람의 작품으로는
문헌상 가장 오랜 것이다.

이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권 13.고구려 본기 제1.유리왕 3년의 항목)

유리왕 3년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가 세상을 떠났다.
왕은 다시 두 여자를 계실로 맞았다.

그 하나는 골천 골에 사는 화희이고,
또 하나는 한 나라 사람의 딸인 치희였다.

이 두 여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왕은 할 수 없이 양곡에 동 서 두 궁전을 지어 따로 살게 하였다.

한 번은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이레 동안을 돌아오지 않았더니,
그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어 화희가 치희를 욕하되,

"너는 한 나라 비첩의 몸으로 어찌 이렇게 무례히 구느냐?"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제 고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돌아와 그 소문을 듣고 곧 말을 달려 그 뒤를 좇았으니
치희는 노염을 풀지 않고 끝그ㅌ내 돌아가기를 거절하였다.

외롭고 슬쓸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왕은 고달픈 몸을 이끌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나뭇가지에 꾀고리들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황조가를 불렀다.

이 노래는 왕이 사랑하는 아내 치희를 잃고, 실연의 쓰라림을
꾀꼬리에 기탁하여 부른 노래이다.

기원전 17년 경에 이미 서정적인 노래가 지어졌다는 것은
문학사상 시가의 발달 과정에서 보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白首狂夫의 아내


공무도하(公無渡河)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公竟渡河)         님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려네
타하이사(墮河而死)         님은 이미 물에 빠져죽었으니
당내공하(當奈公何)         님이여 님이여 어이한다 말고

 

연대: 고조선 때(A.D. 2세기경)
작자: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처
형태: 한역가, 서정시
주제: 남편의 익사(溺死)를 슬퍼함
의의: 황조가와 함께 원시적인 서사 문학에서
     정 문학으로 옮아가는 시기의 작품
출전: [고금주(古今注)](진나라 최표 지음)


고조선의 노래 이 노래는 달리 '공후인'이라고도 한다.
'공후인'은 곡조 이름으로서 여옥(麗玉)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공무도하가'는 가사의 제목으로서 백수광부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중국 문헌인 진(晉)나라 최표(崔豹)가 지은 [고금주]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 땅 뱃사공 곽리 자고(藿里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갈 때, 한 머리 센 미친 이가 머리를 푼 채 술병을 들고

물을 거슬러 건너는데, 뒤따르는 그의 아내가 말리어도 미치지
못하여 드디어 그 늙은이는 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

이에 그 아내가 공후를 가지고 공무도하의 노래를 부르니,
마디마디 구슬펐다. 노래를 마치고 그도 또한 몸을 물에 던져

목숨을 끊었다. 자고가 집에 돌아아와서 아내 여옥에게 아침에 본
그 광경을 이야기해 주고, 또한 그 노래를 들려 주었다.

이를 들은 여옥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며,
벽에 걸린 공후를 끌어 안고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
여옥은 옆집에 살고 있는 여용(麗容)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또한 노래 이름을 '공후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용이 이 노래를 퍼뜨려서 중국의 [고금주]라는 책에 한역되어
오늘날에 전한다.

신화적인 해석 머리가 흰 미치광이(백수광부)는
술의 신(그리스 신화의 Dionysos, 로마 신화의 Bacchus)이요,

그의 아내는 술의 신을 따라 다니는 음악의 신(Nymph의 하나)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

이 노래에서 물(河)의 이미지는 첫째 구절에서 임과 사랑,
둘째 구절에서 임의 부재와 사랑의 끝,
세째 구절에서 임의 죽음으로 나타나 있다.

이 노래는 사랑과 죽음은 서로 바꿀 수 있다는
강렬한 애정 지상주의를 나타낸 것이다

 

정읍사(井邑詞)

                 - 어느 행상의 아내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아 높이높이 돋으시어
아아, 멀리멀리 비추소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님께서 시장에 가 계신가요
아아, 진곳을 디딜까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 곳에서나 짐을 놓고 쉬세요

아아, 님의 길 저물까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연대: 백제 때
작자: 행상인의 아내
형태: 백제가요, 속요(俗謠), 3연 6구
주제: 행상 나간 남편이 밤길에 무사하기를 바람.
의의: 현재 전하여 오는 백제 유일의 노래.
     한글로 적혀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
출전: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
기타: 고려와 이조 때 궁중에서 나례(儺禮) 뒤에
     무고(舞鼓)와 더불어 연주됨.

이 노래는 백제 시대에 지어진 노래의 원형을 오늘에 전해 주는
유일한 것이다. 이름 없는 한 서민 부부의 정을 노래한 것으로서,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정은 충신이 임금을 연모하는
지성(至誠)과 통한다 하여 역대 궁중에서 연회 때 노래되었다.

이 노래에 다른 춤도 있어 '정읍무(井邑舞)'라 한다.

그러나, 조선조 중종 때에 이르러 '동동(動動)'과 함께
음란한 노래라 하여 폐지되었고, 그 뒤 민간에 전승되어
아롱곡(阿弄曲)으로 불리었다.

망부석의 전설 정읍은 전주에 딸린 고을이다. 정읍 사람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그의 아내가 산 위의 돌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남편이 밤길을 걷가가 해를 입을가 두려워함을
진흙의 더러움에 부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는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본 돌,
곧 망부석(望夫石)이 있다고 한다.

출처 : 마음 고인 샘
글쓴이 : 안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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