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적 가(遇賊歌)
[원문]
自矣心米 (자의심미)
貌史毛達只將來呑隱 (모사모달지장래탄은)
日遠烏逸 過出知遣 日遠烏逸 (일원오일 과출지견)
今呑藪未去遣省如 (금탄수미거견성여)
但非乎隱焉破 主 (단비호은언파0주)
次弗 史內於都還於尸朗也 (차불0사내어도환어시랑야)
此兵物叱沙過乎 (차병물질사과호)
乎尸曰沙也內好呑尼 (호시일사야내호탄니)
阿耶 唯只伊吾音之叱恨隱善陵隱 (아야유지이오음지질한은선릉은)
安支尙宅都乎隱以多 (안지상택도호은이다)
* 원문 가운데 0은 결자(缺字)이다.
* 제9행의 선은 삼수 변의 善자이다.
[기존해석]
제 絅坮매
瀝모愷렷단 날
머리-디나치고
○柰수메 가고쇼다
오직 외온 破戒主
저플 즈○蝎외 寗 돌려 이
잠可坮 디내온
됴浬날 새누옷다니
아으 오지 이欖맛한 善은
[현대어 풀이]
제 마음의
참모습을 모르고 숨어 지내던 골짜기를
멀리 지나 보내고
이제는 살피면서 가고자 한다.
단지 그릇된 도둑떼를 만나
두려움으로 다시 또 돌아가겠는가?
이 무서운 흉기의 위험을 지나고 나면
좋은 날이 고대 새리라 기뻐하였더니
아아, 오직 이만한 선업(善業)은
어디 높으신 새집에 두고 숨어선 안 됩니다.
[시어풀이]
* 쟁기: 무기, 칼, 도둑의 흉기
* 파계주: 계율을 어긴 자. 여기서는 도둑을 의미
* 일원조일: 해는 서산에 멀어지고 새도 제 깃에 숨다
* 강호: 세력이 강하여 대적하기 힘든 사람
* 법: 여기서는 佛法을 의미
[시구 풀이]
* 제 매: 제 마음의
* 모렷단 날: 참모습을 모르던 날을
* 머리 ●● 디나치고: 멀리 지나 보내고
* 엳 수메 가고쇼다: 세속의 번뇌를 잊어버리고 이제는 숨어서(살피면서) 가고자 한다
* 오직 외온 파계주(破戒主):오직 그릇된 도둑떼를 만나
* 저플 즈 외 돌려: 깊은 산 속으로 수도하러 가는 중(스님)이다 두려움에 다시 또 돌아가겠는가
* 이 잠: 의연하고 초연한 행동
* 디내온: 이 무서운 흉기의 위험을 지나고 나면
* 됴날 새누옷다니: 좋은 날이 오리라 기뻐하였더니
* 아으 오지 이맛 선(善)은: 아아, 오직 요만한 선업(善業)은 (없으며, 그 업적을)
* 안디 새집 외니다: 새 집이 안 되는구나
[작품개괄]
- 지은이 : 영재(永才 ?-?) 신라 원성왕 때의 승려
- 연대 : 신라 원성왕 때(785-798)
- 갈래 : 향가
- 형식 : 10구체
- 성격 : 교훈적. 교화 설득적
- 의의 : 도둑의 무리를 만나 회개(悔改)시킨 설도(說道)의 노래
- 주제 : 도둑에 대한 교화(敎化)
- 출전 : 삼국유사
- 특징 : 의미의 복합적인 구사를 통한 상징적인 언어가 중첩되었을 뿐 아니라, 원전의 네 글자가 탈락
되어 있기에 향가 중에서 가장 해독이 어려운 작품임.
[작품 해제]
오구라(小倉進平)는 <영재우적>, 양주동은 <우적가>, 김선기는 <도둑 만난 노래>, 김사엽은 <도적가>라 하였
다. 신라 원성왕(元聖王:재위 785∼798) 때 승려인 영재(永才)가 지은 10구체 향가(鄕歌).
영재는 현전하는 향가 작가 중의 하나이며 90세에 입적(入寂)하였다. 화랑 출신으로서 천성이 활달하고 익살스
러웠을 뿐 아니라 물욕이 없었고 향가에도 능하였다. 〈삼국유사〉 권5 영재우적(永才遇賊)조에 실려 전한다.
영재가 남악(南岳)에 은거하러 가던 길에 도둑을 만났다. 도둑은 칼을 영재의 목에 대고 위협했으나 두려워하
는 빛이 없자 그 이름을 물었다. 평소 영재의 이름을 들은 바 있는 도둑은 영재에게 노래를 지으라고 명했다.
노래를 들은 도둑은 크게 감동하여 영재에게 비단 2필을 주었으나 영재는 재물은 지옥으로 가는 근본이라며 거
절했다. 도둑은 이에 감동하여 칼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영재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한다. 빠진 글자가 있어 정확한 해독은 어려우나 대강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지금 나는 내 마음속 세속의 번
뇌를 벗어버리고/깊은 산중으로 수도하러 가는 수도승이다/너희들 칼에 내가 찔림을 받으면 좋은 날이 바로 올
것이라 슬플 것이 없지만/아직도 정진해야 할 길은 멀리 남아 있는데 그렇게 무참히 명을 끊을 수 있겠느냐."
욕심을 버리고 수련을 쌓으며 참되게 살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노래이다.
[배경설화]
영재 스님은 천성이 활달하여 재물에 얽매이지 않았다. 향가를 잘하였는데 늙은 나이에 남악에 은거하려 했는
데 대현령에 이르러 60여 명의 도적을 만났다. 죽이려 했지만 영재는 칼날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태연히 맞섰다. 도적들이 괴이하게 여겨 이름을 물으니 영재라 하였다. 도적들이 본래 그 이름을 들었으
므로 이에 <우적가>로 명하여 노래를 짓게 했다.
도적이 그 뜻에 감격하여 비단 두 필을 주었으나 영재가 웃으며 사양하기를 "재물이 지옥의 근본이 된다는 것
을 알고 장차 피하여 깊은 산에 숨어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찌 감히 받겠느냐?" 하고 땅에 던졌다. 도적이
또 그 말에 감동하여 모두 창과 칼을 던지고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함께 지리산에 숨어 다시
세상을 엿보지 않았다. 영재의 나이는 90이었고 원성대왕 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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